김경순씨(69·가명)는 8년 전 어느 날 아침 몸을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고관절 탈구였다. 서울에 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이 있는 광주로 온 지 8개월 만에 일이 터졌다. 그 길로 요양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김씨는 “처음에 치매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에 갔고 병원생활이 힘들어서 엄청 울기도 했는데 한 1~2년 지내니 적응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의 요양생활은 점점 길어졌다. 나가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돌아갈 집이 없다는 현실에 힘들어졌다. 환자 여러 명이 지내는 공동병실에서 생활하다보니 소음이 심해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밤이 지속됐다. 나가고 싶었다. 만 65세부터 기초연금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퇴원 여부를 알아보려 해도 요양병원에서 “여기 더 계셔야 한다”고 만류했다. 김씨는 “그래도 ‘카’(보행 보조기)만 있으면 걸을 수 있으니까, 걷는 것만 불편했지 정신이 또렷하고 다른 데 괜찮으니까, 요양병원이 꼭 감옥 같았다”고 했다.
■요양병원을 나오자
지난달 30일 광주 광산구 우산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김씨는 올 1월 요양병원에서 나와 이곳,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케어안심주택’에 들어왔다고 했다. 집 안 문턱을 낮추고 미닫이문을 트고 넓히는 등 거동이 불편한 입주자가 생활할 수 있도록 LH가 리모델링한 곳이다. 김씨는 지난해 6월 광산구청 소속 의료급여 관리사와 만난 후 생활비·거처 등 ‘밖에서 살 준비’를 한 후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요양병원에선 환자 수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급여를 받기 때문에 환자의 이탈을 꺼렸다.
“제발 나가게 해달라고 했죠. 요양병원에서는 ‘엄마는 여기서 링거 맞고 누워 있어야 해’ 하면서 의료급여관리사를 못 만나게 해요. 문 앞에서 몰래 만나서 이렇게 나오게 됐는데, 나와보니까 여기가 천국이에요.”
지난해 여름 수급자로 선정된 김씨는 현재 기초연금과 생계급여를 포함해 한 달에 약 54만원을 받고 있다. 김씨는 혼자 살기에는 충분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걷기는 여전히 불편하고 보호자인 아들과 연락은 뜸해졌지만 김씨는 더 이상 일상이 두렵지 않다.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든 도움을 청할 곳이 있어, 주변 사회와 ‘연결돼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매주 한 번씩 동네의원의 주치의가 집에 방문해 김씨의 건강을 살피고, 방문하지 못할 때는 ‘마을건강센터’에서 전화로 김씨의 건강을 체크한다. 매주 한 번씩 구청으로부터 도시락과 반찬 지원을 받고 있고, 요양병원 입원 당시 연을 맺은 요양보호사와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 건강관리 서비스를 지원하는 ‘건강매니저’에게 물리치료를 받던 것은 6개월 전 김씨가 “이제는 더 안 좋은 환자들 봐주라”며 고사하기까지 했다. 김씨는 “이제 잘 때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아도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에 빠져든다”며 “나와서 사니까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만성질환이나 장애가 있어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다수가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요양원)을 찾게 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양로원·요양원, 재가노인복지시설, 노인보호전문기관 등 전체 노인복지시설은 2020년 8만2544개, 입소 정원은 29만7167명에 달한다. 가족이 없는 경우가 있고, 가족이 간병에만 매달리다가는 생계·일상 유지가 어렵게 된다.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도 혼자 필수적 의료·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는 이동이나 정보 취득 등에 한계가 있다. 간병비를 포함한 요양병원비는 한 달에 100만원을 웃돌고, 요양시설도 수십만원대를 오간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 대상자에 선정되더라도 수급자가 요양병원 등에 입원하면 과잉치료를 받으며 의료기관 배만 불려주는 경우가 많다.
■돌봄받는 이의 인권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요양병원 노인인권 보호를 위한 인권교육에 관한 사항을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에 포함할 것을 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요양병원은 1560개에 달하고, 노인인권 모니터링 결과 환자 대상 신체 억제대 사용, 낙상·욕창 등 안전사고 발생, 입·퇴소 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나 알권리 제한, 종교의 자유 등에서의 인권침해 등이 광범위하게 조사됐다. ‘국민인권의식조사’(인권위, 2016년)에 따르면 교사·공무원·사회복지사의 80%가 인권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했지만 의료인은 38.9%만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환자 인권을 보호하는 법정 장치를 마련하라는 취지의 권고였다.
의료기관인 요양병원과 다른 노인생활시설에서도 학대 사례가 늘고 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노인의료·복지시설 학대 발생 건수는 2016년 238건, 2017년 327건, 2018년 380건, 2019년 486건 등으로 매년 늘었다.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의 ‘노인권리기반 장기요양서비스 제도 개선방안 연구’(2018년)를 보면 노인의료복지시설 거주 800명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60%가 본인 의사에 반해 노인의료복지시설에 입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59.4%)가 가장 많았다.
요양병원·시설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복지부의 ‘2020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20년 한 해 노인학대가 인정된 사례는 6259건으로 전년(5243건) 대비 19.4% 늘었다. 학대가 발생한 장소는 가정 내가 5505건(88%)으로 가장 많고, 노인요양시설 등 생활시설 521건(8.3%), 노인복지관·경로당 이용시설 92건(1.5%), 기타 65건(1.0%), 공공장소 39건(0.6%), 요양병원을 포함한 병원 37건(0.6%) 순이었다. 학대 노인 10명 중 8명은 하나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었고, 10명 중 1명은 하나 이상의 장애가 있었다.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는 해당 연구에서 “무조건적으로 좋은 시설, 최고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노인의 인권 관점에서도 중요할 수 있다. 또한 이는 국내 노인복지법 개정의 주요 내용인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와도 궤를 같이하며 새로운 노인 돌봄의 형태로써 재가서비스의 확대가 그 대안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 장기요양 현실은 커뮤니티 케어가 단기간에 자리 잡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설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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