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 2단계 개편이 이달부터 적용된다. 문재인 전 정부가 지난 2017년 만들었던 개편안이 지난달 윤석열 정부의 국무회의를 거쳐 시행되는 것이지만, 후유증이 심상치 않다. 소득요건이 강화되면서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임대·금융 등의 연간 합산 소득이 2000만 원 이상인 사람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 문제다. 특히, 은퇴한 고령층의 충격이 크다. 공적연금이 월 166만6700원 이상이면 소득·재산이 늘지 않았어도 자식의 건보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고 지역가입자로 변경돼 꼼짝없이 건보료를 새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령자가 현재는 국민연금 2689명을 포함해 13만여 명인데, 국민연금 수령자는 앞으로 급증하게 돼 있어 파장이 클 전망이다. |
불똥이 튄 국민연금은 후폭풍이 상당하다. 연금액이 늘면 건보료를 더 내야 하는 탓이다. 그동안 연금액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고 국민연금공단의 권유에 따랐던 가입자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며 항의와 함께 탈퇴를 요청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우려되는 변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만 60세 이후에도 연금에 가입했던 임의계속 가입자와 전업주부 등 임의가입자가 올해 감소세로 전환하고 취소해 달라는 민원이 증가세다. 연금액을 늘리려고 수령 시기를 늦추는 연기 연금과 못 냈던 보험료를 나중에 내는 추납 역시 취소 요청이 늘고 있다. 반면, 연금액 감소를 감수하고 수령 시기를 최대 5년 앞당기는 조기노령연금 수령자는 올 상반기에 오히려 늘었다. 노후의 버팀목이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케어’의 여파다. 문 정부는 5년(2017∼2022)간 건보료를 14.2% 올렸다. 박근혜 정부 4년(2013∼2017)간 인상률 3.9%보다 3배 이상으로 높다. 그런데도 2018년부터 3년 연속 적자다. 건보료는 내년에도 올라 직장가입자의 월급 대비 건보료는 7.09%로 법정 상한선(8%)에 근접해 간다. 그런데도 건보 재정은 오는 2029년께 바닥날 전망이다. 장차 퇴직연금·개인연금 등 사적연금에도 건보료가 부과될 것이란 경고다. 국민을 지켜준다는 건보료가 노후를 위협한다. 보건복지부는 문 정부에선 침묵하더니 이제는 건보 지속성을 위해 보장범위 축소 등을 거론한다. 건보 개혁을 외면한 결과, 혹독한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
건강보험료에 대한 노인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온라인 게시판에 ‘건보료 폭탄을 맞게 됐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이달부터 ‘건보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이 시행되면서 일부 노인이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건보료를 내게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지난해 연간 종합과세 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오는 11월부터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된다. 이 인원이 전국적으로 23만명쯤 된다. 문제는 이들 중 다수가 연금 소득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노인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높아진 물가 때문에 지갑이 얇아진 노인들에게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건보료 폭탄’이라는 말이 나왔다.
예를 들어 건보료를 월 15만원씩 낸다고 하면 연간 부담이 180만원에 이른다. 연금으로 먹고사는 노인에게 100만원이 넘는 추가 지출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도 ‘민란’ 수준의 반발을 우려해 ‘보험료 경감’이라는 장치를 미리 마련해 뒀다. 1년차에는 보험료 부담을 80% 줄여 주고, 2년차부터 차례로 20~60%의 보험료를 경감한다. 그렇지만 흉흉한 민심이 쉬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다.
건보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이제 수입이 있는 노인에게도 보험료를 부과해야 재정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의미다. 인구 고령화 속도를 당장 줄일 수 없으니 매년 급격히 느는 지출을 감당하려면 보험료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럼 국가가 노인에게 기대는 것만이 답일까. 놀랍게도 정부가 드러내지 않는, 사실상 ‘은폐’에 가까운 문제가 몇 가지 있다. 10년 넘게 해마다 반복적으로 국회와 언론이 ‘책임’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가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문제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건보재정으로 충당할 의무가 있다. 이 가운데 14%는 일반예산으로, 6%는 흡연자들이 내는 ‘담배부담금’ 수입으로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마다 이 법정 지원금을 채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한 예로 지난해 일반예산으로 정부가 건보재정에 지원한 금액은 7조 6423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1.5%에 불과하다. 2018년은 예상수입액의 9.7%, 2019년은 10.3%, 2020년은 11.5%만 줬다. 법으로 정해진 거액의 지원금을 깔끔하게 무시해 버린 것이다.
담배부담금을 통한 지원금은 규정 자체가 모순이다. 담배부담금으로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6%를 채우도록 했는데, ‘상한선’이 있다. 담배부담금 예상수입액의 65%를 초과해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다. 사실상 정부가 예상수입액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건보 지원액이 정해진다.
지난해는 담배부담금에서 1조 9167억원을 빼서 건보재정에 투입했는데, 이는 실제 부담해야 하는 건보료 예상수입액 6%에 한참 못 미치는 2.8% 수준이다. 정부는 이 금액이 지난해 담배부담금 예상수입액의 64.7%이기 때문에 위법하지 않다고 한다.
하루하루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가는 국민들은 이런 복잡한 셈법을 알 길이 없다. ‘정부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지나칠 뿐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정부 지원도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점이다. 국고 지원 규정 일몰까지 불과 3개월 남았는데 논의가 없다.
정부는 사회 최약자인 의료급여 수급권자 바로 윗단계 ‘차상위계층’ 건보 지원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고 지원 부족액이 3672억원에 이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정부는 건보재정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럼 과연 국가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노인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부과하기 전에 이런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옳지 않은가.
출처: [데스크 시각] 국가는 건강보험에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정현용 온라인뉴스부장 | 서울신문 (seoul.co.kr)
정현용 온라인뉴스부장
- 이전글역량과 학력을 겸비한 경험과 지혜 활용한 새 노인일자리 사업 개발에 아이디어 모아야 한다. 22.09.25
- 다음글50년 뒤 인구 절반이 노인이 되는 2070년 한국 고령화 속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2.09.08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