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노후에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이 있다
나이 드는 일이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때 병원과 요양원만이 유일한 대안일까?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살던 곳에서 이웃들과 함께 존엄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면, 늙는다는 건 그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피부가 약간의 탄력을 잃은 정도의 일로 여겨질 수 있다. 나이 듦이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규정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는 3일 열리는 제33회 세계협동조합대회 3일 차 행사에서는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실천하는 사례들이 소개된다. 특히 코로나 이후 더욱 주목받게 된 보건과 사회서비스를 주제로 한 세션이 마련돼 고령화 문제와 돌봄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가족 안에서 돌봄을 책임지기 어려워지면서 돌봄에 대한 많은 요구가 시장으로 외주화되기 시작했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으로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할 수 없는 노인을 대상으로 생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지만, 수익 창출에 집중하는 민간의 공급구조에 상당 부분 의존하면서 돌봄의 공공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많다.
<한겨레>가 지난 2019년 봄에 보도한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기사에선 요양원을 “숨 멈춰야 해방되는 곳”으로 비유했다. 모든 곳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실한 식사, 용변조차 자유롭지 못한 일부 요양원에서 노인들은 ‘돌봄’ 대상자가 아니라 ‘처치’ 대상자였다. 여기에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처우 역시 문제였다. 그야말로 무늬뿐인 돌봄, ‘돌봄 워싱’(care washing)이다. 겉으로만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할 뿐, 돌봄의 가치를 훼손하는 곳이 많았다.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돌봄 문제를 연구하는 모임인 ‘더 케어 컬렉티브’(The Care Collective)가 지난해 발간한 책 <돌봄선언>에서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대인 돌봄 아웃소싱(외주화)으로 공동체 돌봄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연구자들은 “모두가 책임을 지는 ‘보편적 돌봄’이 필요하고, 지자체와 협동조합 등 지역 내부 자원을 활용해 공공 부문을 재건해야 한다”고 말한다. <돌봄 민주주의> 저자이자 돌봄 연구 권위자인 조안 트론로 미국 미네소타대 정치학 교수도 “돌봄의 가치는 사물과 상품의 교환가치로 대체될 수 없다. 대인 돌봄은 접촉과 정서적 애착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의 지역사회 기반 돌봄 회사인 ‘뷔르트조르흐’는 대인 돌봄의 가치를 실현한다. 조직 이름도 ‘이웃 돌봄’이라는 뜻이다. 3~4명의 간호사가 팀을 이루어 마을 노인들의 집을 방문해 의료와 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노인의 건강상태 파악은 물론 샤워나 산책 등 생활보조도 함께하면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2006년 설립 당시 4명으로 시작한 조직은 현재 네덜란드 전역에서 850개 팀, 1만명 이상의 간호사가 활동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지역 중심의 대인 돌봄 모델인 뷔르트조르흐 모델은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일본, 인도, 대만 등 25개 국가로 확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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